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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그와트에 다니던 꼬꼬마 시절, 뉴트가 숲에 숨겨둔 히포그리프를 밤에 몰래 보러 갔다가 그 녀석이 뉴트를 매달고 날아가서 미국 어딘가의 숲 속에 떨어뜨리는 거 보고 싶다. 마침 신참 오러인 그레이브스가 수배된 마법사를 쫓아서 그 숲을 헤매다가 뉴트를 발견하고…….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레이브스는 작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향해 지팡이를 들이댔다가, 곧바로 후회했다. 지팡이 앞에 있는 건 자신이 쫓고 있는 수배자가 아니라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이내 후회를 거두고 의심의 촉을 세웠다. 달이 높이 뜬 늦은 밤, 성인 마법사도 잘 다니지 않는 험한 숲 속에 어린아이라니. 어쩌면 수배자가 변신마법으로 자신을 속이려 드는 건지도 모른다. 그레이브스는 아이의 잔뜩 헝클어진 머리부터 긴 망토, 흙투성이의 신발까지 빠르게 훑으며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누구냐. 여기서 뭐하는 거지?”
뉴트는 그레이브스의 추궁에 이름을 말하려다가 머뭇거렸다. 지금 자신은 기숙사에서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몰래 기숙사에서 빠져나온 것을 들키면 교칙 위반으로 감점이다. 안 그래도 어제 10점이나 감점 당했는데…….
하지만 그 감점은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수업 시간에 불쑥 날아든 히포그리프가 집에서 키우던 녀석인 건 맞지만 데려온 게 아니라 그 녀석이 멋대로 따라온 거였는데. 교수님은 위험한 동물을 학교에 데려왔다고 점수를 깎고 그로도 모자라 히포그리프를 숲으로 끌고 가 밧줄로 묶어버렸다.
내일 부모님이 학교에 오실 거다. 교수님이 그렇게 겁을 주었지만 뉴트는 히포그리프의 목이 너무 세게 묶인 것 같아서 그 걱정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이 아프지 않도록 살짝 풀어주려고 새벽에 몰래 나왔다. 줄을 풀었다가 다시 묶기 전에 녀석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버리고, 어딘지 모를 곳에 자신을 내려줄 줄은 몰랐지만….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얼른 녀석을 찾아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누구냐고 물었다.”
뉴트는 무섭게 캐묻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눈앞의 마법사는 미국식 억양으로 말하고 있었다. 여기 영국이 아닌가? 다른 나라까지 날아온 거라면 감점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학교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덜컥 겁이 난 뉴트는 꼼지락거리며 망토 자락을 쥐었다. 하필이면 숲에 들렀다가 바로 수업에 들어가려고 교복을 입고 나온 터라 학교는 이미 알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이름만이라도…. 하지만 다른 사람 이름을 댔다가 같은 이름의 학생이 있으면 걔가 혼날지도 모르는데……. 당황해서 어물거리던 뉴트는 그레이브스가 재차 다그치려 입을 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이름을 뱉었다.
“아, 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
“……네.”
뉴트는 그레이브스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별로 좋아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신의 이름에 붙어있는 미들네임이니까.
“…….”
달밤의 숲 속에서 나타난 아르테미스라. 달을 보고 막 생각해낸 이름인가?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뉴트를 내려다보던 그레이브스는 고민 끝에 천천히 지팡이를 내렸다. 이름을 숨기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자신이 쫓던 놈은 아닌 것 같았다. 겉모습에 말투 억양까지 바꿔서 연기할 만큼 철저한 놈이 적당한 이름 하나 생각해내지 못할 리가 없다는 논리적인 판단이기도 했고, 딱히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직감 때문이기도 했다.
“좋아, 아르테미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보호자는? 혼자 왔나? 여기까진 어떻게 왔지? 오러가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습관이 된 것처럼 취조라도 하는 듯한 말투가 쏟아져 나왔다. 교수님한테 혼나는 기분이 된 뉴트는 어깨를 바짝 움츠리고 대답을 우물거렸다.
“산책을……. 혼자, 아니, 애완동물이랑 같이 왔어요.”
산책? 마을 근처도 아니고 멀리 떨어진 이런 험한 숲 속에서? 가시지 않는 수상함에 그레이브스의 눈과 눈썹이 더 가까워졌다. 게다가 애완동물이라고 할 만한 생물체도 주변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긴 소매나 망토 안까지 꿰뚫어볼 기세로 노려보았지만 작은 쥐 한 마리도 숨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 꼬마는 대체 누군지, 이런 험하고 외진 숲을 헤매고 있었으면서 산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 이유는 또 뭔지. 거두었던 의심을 다시 꺼내야하나 고민하는 찰나, 그레이브스의 등 뒤에서 천둥소리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어느 동물의 울음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
그레이브스는 반사적으로 뉴트를 등 뒤로 숨기고 지팡이를 들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날개를 펼친 히포그리프 한 마리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독수리를 닮은 날카로운 부리, 발톱을 세운 앞발, 사람 하나쯤 거뜬히 들이받을 만한 커다란 몸집. 무엇 하나 위험해보이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동물을 해치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그레이브스는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지금 자신의 등 뒤에는 아이가 있었다. 다치게 하는, 혹은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날 수 없었다.
“안 돼요!”
뉴트가 지팡이를 든 그레이브스의 오른팔을 밀쳐내고 앞으로 달려 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그레이브스가 지금 당장 쓸 만한 주문 몇 가지를 빠르게 생각해내고, 히포그리프가 앞발을 높이 치켜드는 사이. 뉴트가 끼어든 위치도 그레이브스와 히포그리프, 둘의 중간이었다.
“잠깐, 위험…!”
그레이브스는 히포그리프를 코앞에서 맞닥뜨렸던 조금 전의 순간보다 더 다급하게 팔을 뻗었다. 자신을 다 가리지도 못하는 저 작고 어린 몸이 난폭한 짐승의 발에 밟힌다면….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이 뻔한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것은, 그레이브스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모습이었다.
“자, 착하지…….”
저보다 키도 덩치도 월등히 큰 동물을 향해 자그마한 두 손을 내밀고 천천히 다가서는 아이. 괜찮아, 위험하지 않아. 나쁜 사람 아니야,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와 그 앞에서 마법처럼 얌전해져서 날개를 접고 네 발로 땅을 딛고 선 거대한 동물…. 마치 꿈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래, 잘했어.”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무섭게 위협하던 히포그리프가 목을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순식간에 순한 양이 되었다는 것보다, 자신의 앞에서는 긴장해서 시선도 맞추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던 아이가 히포그리프는 서슴없이 쓰다듬고 눈을 맞추면서 웃고 있다는 점이 더 놀라웠다.
“어디 갔다 왔어? 한참 찾았잖아. 네가 날 두고 간 줄 알았어.”
이젠 쓰다듬는 것을 넘어서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말까지 걸고 있었다. 어차피 짐승이라 말이 통하지도 않을 텐데. 아니, 어쩌면 말이 통하는 걸지도….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선 그레이브스는 달빛 아래 짐승과 나란히 서있는 그림자를 천천히 훑었다. 바람이 잔뜩 헝클어놓은 머리카락과 콧잔등에 앉아있는 주근깨마다 달빛이 내려앉은…….
“아르테미스….”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린 말에 달빛이 담긴 눈동자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보름달에 늑대인간 뿐 아니라 보통의 마법사도 홀리는 마력이 있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그레이브스는 어린 아르테미스가 히포그리프 등에 올라타 훌쩍 떠나버리는 것을 잡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날 밤의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믿어줄 이도 없을뿐더러,
‘저 여기서 본 거 비밀로 해주세요. 꼭이요.’
이렇게 작은 부탁을 남기고 갔으니까.
*
물론 진짜 신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이상한 경험을 했다고 넘겼고, 다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 법.
“……아르테미스?”
그레이브스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미간을 좁혔다. 다시 봐도 마찬가지였다. 선반 위에 놓여있는 액자 속에 그날 만났던 작은 아르테미스가 들어있었다. 그때 숲에서 만났을 때와 똑같은 차림의 사진 속 아이는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이쪽을 힐끔힐끔 곁눈질하는 중이었다.
“왜 여기에 사진이…….”
조심스레 액자를 들어 올린 그레이브스는 집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어딘가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이 집의 대문 앞에는 ‘스캐맨더’의 명패가 걸려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뉴트 스캐맨더가 어릴 적에 살았던, 그의 부모님의 집이었다.
다시 만나게 될 줄도 몰랐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있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연인과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찾아왔다가 지난 기억의 한 조각과 마주하게 될 줄이야.
‘동생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조카인가? 아니지, 지금쯤이면 나이가 들었을 테니…….’
지금이면 몇 살쯤 되었을지 나이를 가늠해보는 한편으로, 하나 둘씩 익숙한 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스캐맨더 가에 놓인 사진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아르테미스는 그레이브스가 알고 있는 스캐맨더 형제를 많이 닮아있었다. 형보다는 동생 쪽을 조금 더 많이.
다른 사진이 더 있지는 않을까.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찾는 것처럼 아르테미스…, 중얼거리며 더 위쪽의 선반을 올려다보는데, 그레이브스의 중얼거림에 반응하듯 문 너머에서 뉴트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저 불렀어요?”
“아니, 아르테미스를 찾는 중이야.”
자네는 하던 거 계속 해. 뉴트의 품에 거꾸로 안겨서 동전을 떨어뜨리고 있는 니플러를 힐끗 쳐다본 그레이브스는 액자들을 향해 눈을 돌렸다. 하지만 다음 액자를 살피기도 전에 다시 문 쪽을 돌아보았다. 뉴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고개를 내민 채 동그란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저 말고요?”
“아니, 아르테미스…….”
“그거 제 미들네임인데요…?”
“……?”
두 쌍의 눈이 영문을 모른 채 멀뚱멀뚱 마주쳤다. 뉴트는 팔 안에서 버둥거리는 니플러를 내려놓고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으며 그레이브스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 어릴 때 사진이네.”
그레이브스의 손을 들여다본 뉴트는 멋쩍은 얼굴로 사진을 건네받았다.
“호그와트 입학할 때 교복을 맞추고 찍은 거예요. 키가 클 걸 생각해서 큰 걸로 샀었는데……. 그만큼 크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게 됐었죠.”
뉴트는 빤히 바라보는 그레이브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액자를 선반 위에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그레이브스의 시선도 뉴트의 손을 따라서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사진 속에서 자신을 힐끔거리는 어린 아르테미스와 사진 밖의 뉴트 스캐맨더. 사진 속의 어린 뉴트 스캐맨더와 사진 밖에서 자신을 힐끔거리는 어른 아르테미스…….
그때 못 갔던 한 걸음을 마저 내딛은 그레이브스는 액자를 내려 어린 아르테미스의 사진을 뉴트의 품에 덥석 안겼다. 얼떨결에 액자를 받아든 뉴트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레이브스를 마주보았다.
“왜, 왜요?”
“그때 못 안아 줬으니까.”
“예?”
그레이브스는 짧은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두 팔을 뻗어 작은 뉴트와 큰 뉴트를 한꺼번에 그러안았다.
“그때라뇨?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어요?”
놀람과 당황이 반씩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리는 동안 그레이브스는 뉴트의 가슴께 위로 비죽 올라와있는 액자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비밀이야. 약속했거든.”
그렇지? 그레이브스는 액자 속에서 자신을 힐끔거리는 작은 뉴트에게 소리 없이 윙크해주었다.